임대차보증금 "전세의 안전판인 전입신고(주민등록, 확정일자) 제도의 안전판이 뚫렸다"는 KBS뉴스의 보도가 있었습니다(2023.03.08). 전세 사기 진화 속도가 놀라운데요, 문제된 3가지 사례의 법률배경 및 원인을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글의 순서]
01. 전세제도는 한국에만 있는 이상한 제도
02. 남들도 다 전세를 한다
03. 보증금 돌려받기가 절박한 과제
04.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05. 집값에 육박하는 과다한 돈을 건넨 것이 문제
06. 전입신고: 보증금 돌려받는 제도가 아니다
07. 전입신고: 집주인은 임차인을 존중하게 된다
08. 전입신고와 확정일자: 은행은 대출과 근저당을 꺼린다
09. KBS뉴스 보도의 요지: 임대인이 손을 쓰면?
10. 나도 모르게 전출: 대항력 우선변제력 상실한 사례
11. 모르는 사람이 전입: 전세대출갱신이 어려워진 사례
12. 확정일자부여현황 서류: 위조에는 답이 없다
13. (끝) 집을 잃어도 좋은 소유자? 있다
01. 전세제도는 한국에만 있는 이상한 제도
외국에는, 타인 집에 빌려서 살려면 매월 월세를 내지 한국처럼 "거액의 목돈"(임대차보증금)을 임대인에게 맡기는 "전세제도"라는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집주인이 목돈을 꿀꺽하고 안 돌려주면 어떻게 하느냐 하는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02. 남들도 다 전세를 한다
그런데, 대한민국 도시에서 남의 집에 살려면 좋든 싫든 전세제도를 이용하게 됩니다. 남들도 다 이용하는데 이 제도의 문제점을 거론하기도 좀 그렇고, 전세를 하면 월임료가 낮은데 "배부른 소리 한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겠습니다.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 (단위: 가구)에 의하면, 전월세와 자가 비율은 다음과 같습니다 (위 날짜 KBS뉴스)
- 전세: 325만 2천 (15.5%)
- 월세: 478만 8천 (22.9%)
- 자가: 1,198만 9천 (57.3%)
03. 보증금 돌려받기가 절박한 과제
예전엔 임차인 가족이 어디에라도(현재 집에라도) 그냥 거주만 하면 충분한 보호가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임차인은 다른 곳으로 이사 나가야 할 필요성이 커졌습니다. 그리고 이사를 가려면 목돈(보증금)을 돌려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새 집에 또 보증금을 지불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임차인에게는 거액의 보증금을 돌려받는 것이 참으로 절박한 과제입니다.
04.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부동산중개소에서 임차인에게 추천하는 것은 월임료가 싼 "전세"입니다. 월임료가 비싼 "월세"부터 보여주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거액의 임대차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 하는 껄끄러운 법률문제(법률 리스크)는 지금 당장의 문제가 아니고 2년 후의, 임차인의 문제인 것입니다. 껄끄러운 위험을 부각하는 것은 중개인의 역할이 아닙니다. 나중의 문제이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인데, 중개사가 이런 문제를 거론하면 거래성사에 도움이 안 됩니다.
05. 집값에 육박하는 과다한 돈을 건넨 것이 문제
문제는, 임대차보증금이, 집을 망가뜨릴까 봐 보증하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너무나 큰돈이라는 점입니다.
전세제도도 문제고, 나쁜 마음을 먹은 듯한 임대인도 문제고, 집값이 계속 떨어지는 추세이니 전세금이 집값의 절반을 훌쩍 넘기는 것도 문제고, 생각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그럴수록 문제의 근원인 너무 큰돈을 임대인에게 건넸다는 점, 외국은 월세밖에 없다는 점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06. 전입신고: 보증금 돌려받는 제도가 아니다
전입신고를 하고 확정일자를 받아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듣습니다.
맞는 말이지만, 집주인이 거액의 임대차보증금을 꿀꺽해 버리면, 전입신고를 한 임차인은 집에서 안 나가고 버틸 수 있을지언정("대항력"), 임차인이 집을 경매에 넘기는 식으로 판매할 수도 없으니, 돌려받을 돈뭉치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임차인이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을 길은 없습니다.
한~참 나중(1년도 훨씬 넘은 이후), 그러니까, 지연이자가 집값에 육박하게 될 때까지 기다리던 은행이 집을 경매에 넘기고 경락이 되면 경락대금에서 확정일자 기준으로 돈을 우선 받을 수는 있습니다만("우선변제력"), 그때까지 마음고생은 둘째 치고, 만일 헐값에 팔리면 그나마 보증금 일부는 결국 못 받습니다.
채권에 불과한 임대차에 이런 효력을 인정해 주는 것이 그나마 어디냐 하지만, 대항력이나 우선변제효력이, 돈을 돌려받는 제도는 아닌 것입니다.
07. 전입신고: 집주인은 임차인을 존중하게 된다
임차인이 전세계약서로 동사무소에서 전입신고를 하고 확정일자를 받으면, 집주인이 집을 판매하거나 새로운 임차인을 들이려고 하여도 임차인은 안 나가고 버틸 수 있는 법적 권한이 있으므로(대항력) 그 결과 새로운 집주인이나 새로운 임차인이 기존임차인을 우선적으로 존중하게끔 계약체결하게 만드는 실질적 효과가 있습니다.
08. 전입신고와 확정일자: 은행은 대출과 근저당을 꺼린다
또, 임차인이 전세계약서로 동사무소에서 전입신고를 하고 확정일자를 받으면, 실제로 거주하는 임차인에게는 대항력과 우선변제효력을 누릴 수 있는데, 소유자로부터 집담보대출을 의뢰받은 은행은 동사무소에 신청해서 발급받는 확정일자 부여현황을 보면 그 집의 임대차보증금 액수도 확인할 수 있으므로, 은행은 그만큼 대출을 꺼리게 됩니다.
즉, 전입신고와 확정일자가 대출자(은행)가 대출을 못하게 억지하는 실질적 효과도 있습니다. 그러니 집주인도 웬만해서는 대출을 못 받고, 반사적으로 임차인의 보증금도 그만큼 안전하게 됩니다.
정리하면,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는, 보증금을 돌려받는 제도는 아니지만, 실제 효과로 보면, 집주인을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효과(07)와 은행이 대출을 못하게 억지하는 효과(08)가 있다"가 될 것입니다.
09. KBS뉴스 보도의 요지: 임대인이 손을 쓰면?
임차인이 전입신고하고 확정일자 받은 상태에서는, 담보가치가 적다고 보아은행은 대출을 해 주지 않으므로 임대인(소유자)은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을 수 없으므로 보증금상환도 불안해지지 않는 것이 정상이지만, (임대인 측에서)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를 "손을 보"면, 은행은 이를 믿고 집을 담보 잡고 대출을 해 준다, 결과적으로 전세금반환을 못 받을 가능성이 확 높아진다 고 보도하였습니다.
"전입신고하고 확정일자 받았는데 어떻게 임대인이 대출을 받을 수 있지?" 하는 의문이 들 텐데, 주민등록법상 전입신고 제도의 허점을 이용하면 얼마든지 대출(과 근저당 설정)이 가능하다는 것이 이번 뉴스 보도의 요지입니다.
10. 나도 모르게 전출: 대항력 우선변제력 상실한 사례
이번 KBS뉴스의 첫째 사례입니다. 은평구에 멀쩡히 전세 입주하여 살고 있는 김 모 씨가, 성북구청으로부터 "여기 성북구 모처에 전입신고를 당신이 했는데, 여기 거주하는 게 맞냐?"는 전화를 받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신원이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성북구청에서 김 씨라는 신분증을 제시하고 김 씨를 자기 집 세대원으로 꾸며서 전입신고를 했고 이로써 자동적으로 김 모 씨는 은평구에서 전출해 버렸으므로, 법적으로는 은평구가 빈 집이 되어 버렸으니, 은행은 대출을 꺼리지 않아도 되므로(08), 은평구 집주인은 전출된 사이에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버린 것입니다.
몰래 전입신고한 "누군가"와 은평구 집주인이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는 없으니 은평구 집주인은 의심만 갈 뿐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대출한 은행은 아무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뒤늦게 성북구청은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였지만, 법적으로는 김 씨가 전출해 버린 것이 맞으니, 대항력과 우선변제효력을 상실해 버렸습니다. 은평구 집주인이 은행대출금을 갚으면 아무 문제가 없지만, 김 모 씨는 현재로서는 법적 보장수단이 없는 상태인 것입니다.
11. 모르는 사람이 전입: 전세대출 갱신이 어려워진 사례
보도된 둘째 사례에서는, 정반대로, 자신이 사는 전셋집에 생면부지의 사람이 몰래 전입신고를 했고, 졸지에 1 가구 2 주택이 되면서, 전세대출 갱신을 못 받을 수도 있게 된 사례입니다. 전세자금 대출 연장을 하려면 "전입 세대 열람원"이라는 서류를 제출해야 해서 확인을 했더니, 새로운 임차인이 임대차계약을 또 맺어서 그 사람이 또 다른 세대주로 올라가 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법적으로도, 1 가구에 여러 개의 임대차계약이 존재해도 되므로, 구청에서도 누가 신분증과 임대차계약서를 들고 와서 전입신고를 하면, 거절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민법, 주민등록법). 특히, 누가 와서 전입신고를 했다고 해서 다른 세대주와 소유자에게 즉시 통지해 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인지, 이런 나쁜 일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주민등록법 위반으로 고발되는 상당 사례가, 위 10,11처럼 몰래 전입에 대한 것이고(행안부 자료: 2020년 82건, 2021년 102건), 지난해 2022년부터 전입신고를 이용한 사기가 속출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서 빨리 범죄인을 잡아햐 하겠지만, 지금 당장 실질적으로 피해가 발생한 것은 임차인인 것입니다.
12. 확정일자부여현황 서류: 위조에는 답이 없다
마지막 세 번째는 (전입신고제도의 허점은 아니고) 위조를 한 전세사기 범죄입니다.
인천 오피스텔 17채를 대상으로 이루어졌는데, 임대인 등은 먼저 전세계약을 체결하여 전세보증금 58억 원을 받아 챙긴 다음, 보증금 총액 5억 원이라고 월세계약서로 위조하고, 나아가 지방자치단체가 발행하는 확정일자 부여현황 서류의 보증금 액수도 위조하는 짓을 하였다고 합니다. 담보물인 오피스텔이 모두 월세로서 보증금 반환 부담이 적다고 믿은 대부업체는 25억 원을 대출해 주었습니다.
우연히 등기부등본을 떼어보고 근저당권이 설정된 사실을 알게 된 채무자들은, 채무가 불안한 임대인이 전세보증금 반환을 거부할 까 봐 불안한 날을 보내고 있고, 인천중부경찰서는 임대인 등을 사기 혐의로 수사하고 있다고 합니다.
HUG(주택도시보증공사) 보증금반환 보증에 가입한 경우, 사기를 당했다는 것을 입증하면, 보증금을 지급받기가 조금 용이해진다고는 하지만, 과연 17건이나 되는 공문서 위조를 한 임대인 등이 과연 대부업체대출금을 제대로 상환하고 임대차보증금도 제대로 반환할까요? 의문입니다.
13. (끝) 집을 잃어도 괜찮은 소유자? 있다
이상으로, 금번 KBS보도 내용과, 그 배경 법률에 관해 알아보았습니다.
전입신고와 확정일자 제도는(대항력과 우선변제효력은) 임차인이 돈을 돌려받는 제도가 아닙니다 (06).
또, 이번 뉴스를 보면, 사람들(특히 임차인)이 그 제도만 믿고 있기에는, 제도에 허점이 많거나(10 첫째 사례)(11 둘째 사례), 임대인이 너무 악랄합니다(12 셋째 사례).
집을 당장 구해야 하는 임차인으로서는 가장 근원적인 문제인 "너무 큰돈을 임대인에게 건네"(05)는 것이 과연 옳은가. 의 문제에 관심을 돌려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특히, 목돈인 전세금을 임대인에게 건넬 때에는, 임대인(=소유자)이 그 집에 아무 미련도 없을 수도 있다, 집 소유권증서를 일종의 "도구"로 이용해서 소유권증서를 보여줘서 1. 임차인에게서는 보증금을 받고, 뿐만 아니라 동시에, 2. 은행에서는 대출금을 당기기에 성공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한 번쯤 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전세가 당장 사라져야 할 제도도 아니므로, 일단 빨리 전입신고제도의 허점(특히 전입신고자의 신분확인 등)이 제도적으로 개선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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